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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곽희문 강동희 선교사 소식
2016-03-25
yskim
2016년 3월 24일 목요일 날씨. 더위는 고난의 품목에 없다. 그런데 막 고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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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삼하 23:39)
  
본의든 타의든 우리의 이름은 평생 동안 수많은 곳에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 중에는 뒷장까지 찍혀 나올 만큼 꾹꾹 눌러서 내 이름을 석자를 쓰고 싶은 곳도 있겠고, 반대로 번듯하게 적힌 내 이름을 보며 내가 아닌 동명이인이라고 우기고 싶은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류 대학 합격자 명단은 돈을 주고서라도 이름을 올리고 싶은 선망의 리스트겠지만, 검찰이 차례로 소환 조사하는 정, 관계 로비 리스트 명부는 돈을 주고서라고 이름을 지워 버리고 싶은 곳이겠지요.
월드컵 선수 명단은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올라가고 싶은 자리지만, 약물 복용 선수 명단은 내 이름이 잠시라도 오르는 일조차 끔찍하다고 여길만한 곳이고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뱃속에 있는 장기들의 위치가 뒤집어질 만큼 환장(換腸)하며 내 이름을 올리고 싶은 곳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곳입니다. 그러기에 경쟁률이 대단하겠지요.
나는 좋아죽겠는데 다른 대다수는 관심이 없는 곳이라면 ‘미달’이라는 대박의 운을 맛볼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그곳이 그렇게까지 대박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영악한데 그토록 좋은 곳을 남의 이름이 올라가도록 뒷짐만 지고 빈칸으로 내버려두겠습니까.
학창 시절에 남들이 모두 사는 정석이나 해법 수학을 사는 대신 듣도 보도 못한 출판사에서 나온 수학 참고서를 사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믿음은 이것이었지요.
’ 선생님이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이 참고서에서 문제를 내신다면 나만 100점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선생님조차 그 출판사를 전혀 모르셨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올리고 싶은 곳은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도 언제나 북적입니다.
내 이름이 절대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곳은 다른 사람들의 이름들도 한산합니다.
그것이 세상이지요. 우르르 몰려갔다가 우르르 달아나는 그런 곳 말입니다.
세상이 금박으로 된 명단을 만들어서 요리저리 흔들면 사람들도 덩달아 요리저리 흔들립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준 세상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결국은 충성을 맹세하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ㅇㅇ대 출신으로 ㅇㅇ회사에 입사한 ㅇㅇ家의 자녀이신 홍길동 앞에서 사람들은 주눅이 들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하는 것은 결국 어느 명단에 올라있는 사람이냐로 판단되도록 입력된 것이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토록 무시를 받으신 것이겠고요.
ㅇㅇ대 출신도 아니고 ㅇㅇ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신 것도 아니며, ㅇㅇ家는커녕 보잘 것 하나 없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본인도 목수가 된 볼품없는 총각을 무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세상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러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도 안타깝지만 금박으로 둘려진 명단에 있는 누구를 만나면 괜히 고개가 숙여지고,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진리 같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이분이 저희 교회 장로님이십니다.” “아, 그러세요. 안녕 하세요”
 
“잘 아실 겁니다. 현재 여당 국회의원으로 계시는..”
 
“아이고. 세상에. 그러시구나. 이런 귀한 분을 뵙게 되다니요.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적힌 이름보다 세상의 금박출석부에 적힌 이름이 더 어필하는 곳은 비단 세상 뿐만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지만, 저 같은 속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세상에 적혀있는 우리 이름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과 비례해서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 이름이 점점 또렷해 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삼하 23:8)
 
다윗의 용사들이라는 명단이 있습니다. 다윗 한 사람에게 충성한 사람들을 적어놓은 명단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이곳에 있는 37명의 용사들은 때로는 그들의 업적과 더불어, 때로는 이름으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들의 업적이 적혀 있든지 아니든지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가슴에 지니고 계신 생명책에 적혀진 이름이라니요. 저의 이름까지는 모르실지라도 ‘거기 어디냐. 케냔가 하는 곳에서 시골로 왔다 갔다 하던 걔’ 정도로만 기억해 주셔도 감지덕지에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을 취한 것일 텐데요. 제 삶을 보면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참 자신 없는 자에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그분께 기억되어지는 삶을 말씀으로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기억되어진 사람들의 정답의 삶과 더불어 기억되지 않은 오답의 삶도 알려주심으로요. 하나님께 기억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말씀이 바로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이 아닌가 싶어 나누려고 합니다. 사무엘하 23장 8절부터 39절까지 찬찬히 먼저 묵상하시고 아래 글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읽으신 대로 사무엘 상하를 통해 여러 번 봤던 이름들도 있고, 처음 보는 이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기야 어느 쪽이면 어떴습니까. 기억만 해주신다면 하나님의 드라마에 몇 번 등장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지요. 지나가는 행인3이어도 좋고 시체5여도 좋습니다. 백만 피스짜리 하나님 나라의 퍼즐에 점 하나로 저 구석에 박혀 있어도 상관이 없고요. 그곳에 있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한 37명의 용사를 보며 그저 부러운 마음입니다. 저희 이름도 이 분들처럼 하나님의 가슴에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 매몰찬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 명단에 없을 것을 본인도 알고 남도 아는 사람들은 그 안타까움이 차라리 덜 할 겁니다. 그런 분들은 애초에 생명책이라는 명단에 관심이 없는 삶을 살았을 테니까요. 안 믿거나 못 믿거나 덜 믿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문제는 안 믿거나 대강 믿은 분들의 경우가 아니라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분명 생명책에 있을 거야’ 라고 인정한 사람이 명단에서 누락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본인은 물론이고 남들도 그 안타까움에 동참을 하게 되지요. 월드컵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고 나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상과는 달리 이 선수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이 발표된 후 우리에게도 이런 질문이 하나 생길만합니다. 
 
‘예상과는 달리 요압이 보이질 않습니다.’ 
 
위 명단의 이름은 다윗의 용사들 (mighty men)입니다. 일견으로 생각해서 용사라면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승전고를 울린 사람들을 용사라고 부르니까요. 다윗 밑에서 싸운 많은 장수들 중에 사실 요압 보다 더 용감하게 더 많은 적을 물리친 장수가 몇이나 될까요. 물론 요압이 성깔이 있어서 여러 짓을 한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명단의 이름이 다윗반의 모범생들이 아닌 다윗의 용사들이라면 사생활 부분은 좀 뒤로 하고 전쟁터에서 보여준 전적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좁은 견해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참 가차가 없으십니다. 요압의 이름을 거론조차 하지 않으시니 말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삼하 3:27)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요압은 동생 아사헬의 복수를 위해 다윗과 조약을 맺으러온 이스라엘의 사령관인 아브넬을 죽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셈이지요. 성경은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시는데 말입니다. 사실 내 선에서 복수를 하려는 것은 공의의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가 침범 받는 것을 용납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시기에, 만약에 내가 당한 억울함이 하나님의 공의를 침범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에 개입을 하신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그러하기에 내가 당한 억울함이나 피해를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 보실까를 묵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복수를 하려고 산에 들어가서 수 십 년 동안 이단옆차기를 연습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로 나에게는 억울한 피해로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상관없이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이런 것을 저보다 훨씬 더 잘 알 만한 사람인 요압이지만 결국 손수 복수를 함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삼하 18:14) 
 
요압이 저지른 다른 사건으로는 반역을 일으킨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을 죽인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분명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요압은 뒤처리가 깔끔한 성격이었는지 언젠가 또 다른 불씨가 될지도 모르는 압살롬을 그냥 죽여 버립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요압은 그 말이 사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는 순종하지만 윗사람에게는 봐가며 순종한다는 교만으로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곡해하고 있었을 지도요.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삼하 20:10) 
 
그리고 하나 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사령관인 아마사를 죽인 이도 요압이었습니다. 이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그냥 질투가 원인이었습니다. 비느하스와는 달리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를 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질투를 하실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독생자를 내놓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에 질투를 하심이 그래서 당연합니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언제 한번이라도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하나님처럼 사랑한 적이 있다고 질투를 한답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가지는 질투는 모두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질투의 하나님이시니 나의 질투도 결국은 하나님 품성의 일부야’라는 말은 그러므로 벼락 맞을 소리가 되는 것이고요. 이 말은 곧 ‘예수님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랑이시니 우리도 그분의 성품을 닮아 여러 명의 신랑이 되기 위해 많은 첩을 둬야해’ 라는 말과 아주 닮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첩을 여럿 두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입이 아니라 주둥이겠지요.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왕상 1:7)
 
아무튼 참 여러 가지를 한 요압이 마지막으로 한 못된 일은 솔로몬에게 갈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아도니야의 편에 선 것입니다. 다윗에게 밉보였기에 앞날이 걱정되던 참에 아도니야가 괜찮은 제안을 했었을 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 놈의 명예욕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난리를 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같은 모양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가 추구하는 대부분의 욕구가 그 힘을 읽어갈 즈음에 욕구의 평균치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녀석이 바로 이 명예욕입니다. 주변에 혹시 이 명단 저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고 기웃거리는 어르신이 계시다면 동네 최고 레벨이 이장쯤 되는 공기 좋은 시골로 보내드리는 것이 그 어르신을 위한 겁니다. 혹시 저도 말년에 노망이 나서 명함에 다른 이름을 파기 시작하면 고려장을 해서 산속에 버리시는 것이 저를 위하는 것이니 부탁드립니다. 
 
  
 
분냄으로 인한 복수, 질서에 대한 불순종, 질투심 그리고 명예욕. 
 
이것이 요압이 다윗의 용사들이라는 명단에서 탈락한 원인 같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는 성깔과 별다름이 없는 것들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요압은 본인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아웃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요.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까요. 이렇게 여러 가지 짓을 하면서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압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다윗이 뽑은 용사들이라는 시상식이 있으면 최소한 탑3 안에는 들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세상에서 쳐주는 박수소리를 그리워하며 살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전혀 모른 채 잘 살고 있는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요압이나 우리는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못돼먹은 마음을 품고 살면서도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명단에 한 칸은 반드시 차지한다는 확신도 아닌 객기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동안 해왔던 업적들로 이런 사소한 잘못쯤은 충분히 덮고 갈 수 있다는 수학적 계산 때문이었을 겁니다. 수많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을 지켜낸 자신의 업적은 본인도 남들도 요압을 참 괜찮은 사역자로 생각하도록 만들었겠지요. 그래도 그분이 일 하나는 정말 잘하셔.’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분의 추진력이나 카리스마를 봐. 보통 분은 아니잖아‘ ’저렇게 대단한 사역을 일궈놓으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임에 틀림이 없어‘ ’ 그만한 사역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어. 성질이 좀 그렇지만 일단 일 하나는 끝내주게 한다는 건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이런 괜찮은 평판을 가진 채로 요압은 결국 하나님의 명단에서 아웃되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아마도 수학적 계산으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신 하나님에게 수학적인 잣대로 구원을 확신하는 우리의 삐뚤어진 마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말은 곧 아마도, 하나님은 칼을 잘 휘두르는 무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칼을 쓰실 하나님을 기다리며 칼을 칼집에 넣고 있을 수 있는 용사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역이 일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사역자들은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보셨을 겁니다. 알 듯 말 듯 한 이 말의 의미는 아마도 이러할 지도요. ‘세상은 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우쭐할 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업적으로 자신의 성품의 모난 부분을 덮고자하는 사람은 세상의 가치로 하나님 일을 한 것이기에 사역이 아닌 일을 한 겁니다. 요압처럼 말입니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의 공의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윗사람 보다 내 판단이 더 낫다는 교만이 생길 때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생각하고
 
질투심이 생길 때 누군가를 위해 예수님처럼 다 준 적이 한 번도 없는 나를 보고 
 
명예를 갖고 싶을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하나에 만족을 못하는 나를 고백하며 살다보면 일 좀 못하더라도, 삐그덕 거리며 매일같이 사고만 치고 다니더라도 하나님은 기억해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축하기 위해 벽돌만 잘 나르는 일꾼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겁니다. 마치 아파트 공사를 한 사람들이 모두 그 아파트에서 사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이미 임한 자가 아닐지 싶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여 벽돌을 나르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겠지요. 그런 자는 벽돌을 나르다가 몇 장 깨도 괜찮습니다. 남들처럼 한 번에 많은 벽돌을 나르지 못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으니까요. 결국 하나님 나라의 벽돌은 하나님이 쌓으십니다. 우리가 무슨 수로 그렇게 높고 넓은 그분의 나라를 짓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할 뿐입니다. 다윗의 용사들 명단에 없는 요압은 좋은 일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예배자는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아웃을 결정하신 것이 아닐지요. 
 
  
 
벽돌을 가지러 가는 길에서도 예배자임을 잊지 않고 살다보면, 일 좀 못하더라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말로 사랑하는 예배자로 하나님이 가슴에 지니고 계신 생명책에서 다같이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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