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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2 Hit : 150
김용선
말을 줄이며
우리는 워낙 배가 고팠던 민족이라 그런지 유난히 먹는 것에 대한 말 표현이 많다.
“진지 잡수셨습니까?”하는 인사는 어려서 늘 듣는 인사였다.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적어도 지금은 이런 인사를 하지 않을 만큼 배는 곯지 않아도 되니 감사해야 한다.
한 집에서 함께 한 솥의 밥을 먹게 되면 식구라고 했다.
식구가 [밥食식 입口구]이기 때문이다.
60 년대까지만 해도 가난한 집 어린 딸들은 먹는 입이라도 덜자고 남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 살아야 했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중요한 토막은 대개가 먹은 얘기다.
먹는다는 것은 엄숙한 의식이라고 봐야 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지 일단 감사하고 먹는다.
밥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한다.
밥 먹을 땐 말도 하면 안 된다.
그런가하면 먹는다는 말을 붙이면 나쁜 말로 은유될 수도 있다.
[따먹는다], [벗겨먹는다] 하면 성폭행이 연상되고
[쳐 먹는다]는 뭔가를 더 넣어서 먹는 말 일터인데도 미운사람이 먹는 모습이다.
[망해 먹었다]는 망했으면 망했지 왜 [먹었다]에 붙였는지 모르겠다.
[뜯어 먹는다]는 남의 것을 빼앗아 먹었다는 말도 된다.
[엿 먹으라]는 말의 유래는 전혀 나쁜 말이 아니라는데도 이 말하면 한 대 맞을 수도 있는 말이 되었다.
이렇게 숭고한 [먹는다]는 말이 천박하고도 고약한 표현으로도 될 수 있다.
[따져 봅시다]하면 시비를 가려 공정하고 공평하게 하자는 말이지만 [싸우자]는 말로 듣는 사람도 있다.
모든 말들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가 하는 것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려질 수 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유창하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오해가 없이 잘 알아듣게 하는 것이고 그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말 수가 적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글도 점점 짧아질 거다.
이게 정상일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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